왜 크툴루를 본 사람은 미치는가
H.P.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에서 크툴루를 본 사람은 미친다. 예외가 없다. 과학자든, 선원이든, 탐험가든 상관없다. 그들은 그것을 보고 언어를 잃는다. 논리를 잃는다. 자아를 잃는다. 이건 단순한 공포 장치가 아니다. 러브크래프트는 우연히 정신분석학의 핵심을 건드렸다. 자크 라캉이 평생 설명하려 했던 것. 인간의 정신이 어떻게 유지되고, 어떻게 무너지는가. 라캉은 인간의 정신을 세 개의
H.P.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에서 크툴루를 본 사람은 미친다. 예외가 없다. 과학자든, 선원이든, 탐험가든 상관없다. 그들은 그것을 보고 언어를 잃는다. 논리를 잃는다. 자아를 잃는다. 이건 단순한 공포 장치가 아니다. 러브크래프트는 우연히 정신분석학의 핵심을 건드렸다. 자크 라캉이 평생 설명하려 했던 것. 인간의 정신이 어떻게 유지되고, 어떻게 무너지는가. 라캉은 인간의 정신을 세 개의
당신이 회의에서 프레젠테이션을 끝냈다. 내용은 탄탄했다. 논리는 명확했다. 그런데 누군가가 손을 든다. "그건 '~에 반해'가 아니라 '~에 비해'입니다." 회의실이 조용해진다. 당신이 말하려던 핵심은 증발한다. 남는 건 어색함뿐이다. 이런 사람들이 있다. 맥락을 놓치고 용어를 잡는다. 의미를 무시하고 맞춤법을 교정한다. 당신이 무엇을 말했는지는 중요하지
당신이 아침에 회사에 출근할 때 쓰는 표정이 있다. 상사 앞에서 쓰는 표정이 있고, 동료 앞에서 쓰는 표정이 있다. 연인 앞에서 쓰는 표정도 다르다. 당신은 이미 알고 있다. 세상은 무대이고, 당신은 배우라는 것을. 17세기 스페인의 예수회 사제 발타자르 그라시안(Baltasar Gracián)은 이걸 '대우주 극장(El gran teatro del Universo)
환승연애4가 화제다. 시청률이 높다. 댓글이 쏟아진다. 사람들은 열광한다. 그런데 뭘 보는 건가. 사랑? 아니다. 우리는 고통을 본다. 프로그램의 구조를 보면 명확하다. 전 연인들을 한 공간에 넣는다. 그들에게 과거를 꺼내라고 한다. X룸이라는 장치로 상처를 파헤친다. 이별의 이유, 배신의 순간, 눈물. 이 모든 것이 카메라에 잡힌다. 김인하 PD는 이렇게 말했다. "X룸은
커뮤니티에 글이 올라왔다. "요즘 대세는 이거지." 댓글이 달린다. "인정", "ㄹㅇ", "팩트". 우리는 이걸 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아, 그게 대세구나." 그런데 잠깐. 누가 정했나. 누가 대세라고 결정했나. 글쓴이? 댓글 단 세 명? 아니다. 아무도 정하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된 것처럼 보일
우리는 이상한 시대를 산다. 과거엔 "하지 마라"가 억압이었다. 지금은 "즐겨라"가 억압이다. 맛집 가야 하고, 여행 가야 하고, 취미 가져야 하고, 행복해야 한다. 쉬는 것조차 과업이 됐다. 휴가 가서도 인스타에 올릴 사진 걱정한다. 즐기느라 지친다. 슬라보예 지젝(Slavoj Žižek)은 이걸 정확히 짚었다. 현대 사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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