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기느라 지친 사람들
우리는 이상한 시대를 산다. 과거엔 "하지 마라"가 억압이었다. 지금은 "즐겨라"가 억압이다. 맛집 가야 하고, 여행 가야 하고, 취미 가져야 하고, 행복해야 한다. 쉬는 것조차 과업이 됐다. 휴가 가서도 인스타에 올릴 사진 걱정한다. 즐기느라 지친다.
슬라보예 지젝(Slavoj Žižek)은 이걸 정확히 짚었다. 현대 사회는 "즐겨라"라고 명령하는 사회다. 그는 이걸 초자아의 향유 명령이라고 불렀다. 옛날 초자아는 "참아라, 억제해라"라고 말했다. 지금 초자아는 "즐겨라, 소비하라, 행복해라"라고 명령한다. 더 외설적이고, 더 강압적이다.
문제는 이 명령을 수행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우리는 영원히 만족할 수 없다. 욕망은 채워지는 순간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핫플 갔다. 좋았다. 그런데 벌써 다음 핫플이 생겼다. 또 가야 한다. 이 무한한 사이클 속에서 우리는 즐기지 못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낀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지젝이 말하는 핵심은 세 가지다. 첫째, 대타자의 시선. 우리는 내가 진짜 원하는 걸 즐기는 게 아니다. 사회가 원하는 걸 즐긴다. 남들 다 가는 곳 가야 하고, 남들 다 먹는 거 먹어야 하고, 남들 다 하는 거 해야 한다. 대타자란 게 뭔가. 사회적 권위다. 상징적 질서다. 존재하지도 않는 거대한 눈이다. 근데 우리는 그 눈을 의식하며 산다.
둘째, 주이상스의 고통. 주이상스는 쾌락이 아니다. 쾌락을 넘어선 뭔가다. 고통스러울 정도로 과도한 쾌락. 반복적이고 파괴적인 충동. 우리는 이걸 처리 못 한다. 너무 많은 자극, 너무 많은 선택, 너무 많은 즐거움. 역설적으로 이게 우리를 지치게 한다.
셋째,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결여. 우리는 뭔가 잃어버렸다고 느낀다. 저것만 있으면, 저걸 하면, 저 경험을 하면 완전해질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런 건 없다. 애초에 없었다. 우리는 태생적으로 불완전한 존재다.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니까 계속 채우려 든다.
"대타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를 감시하고 평가하는 거대한 시선은 허구다. 그런데 우리는 그 허구를 위해 즐거운 척 연기한다.
해법: 환상을 가로지르기
지젝의 솔루션은 단순하지 않다. "덜 즐겨라"가 아니다. "금욕하라"도 아니다. 오히려 환상의 구조 자체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라캉은 이걸 '환상 가로지르기'라고 불렀다.
첫 번째 단계는 대타자가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를 평가하고 명령하는 그 거대한 존재는 실제로 없다. 그냥 우리가 상상한 것이다. 대타자가 없다면 우리는 대타자를 위해 행복한 척할 필요가 없다. 즐기지 못해서 죄책감 느낄 필요도 없다.
두 번째는 결여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는 영원히 불완전하다. 공허는 채워지지 않는다. 그게 인간의 조건이다. 이걸 인정하면 역설적으로 자유로워진다. 채워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난다.
세 번째는 증상과 동일시하기다. 우리 각자엔 고유한 증상이 있다. 반복되는 패턴, 설명 안 되는 집착, 이상한 버릇. 이걸 고치려 들지 말라. 이게 바로 나다. 이 비정상성이 나를 나답게 만든다. 억지로 정상인 척하지 말라는 것이다.
"즐겨야 한다는 의무로부터의 해방"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나은 힐링이 아니다. 더 완벽한 쾌락도 아니다. 즐겨야 한다는 명령을 거부하는 것이다.
역설의 정체
지젝의 진단을 따라가다 보면 우스운 지점에 도달한다. 우리는 즐기느라 지쳤는데, 해법은 "즐기지 않아도 된다"는 걸 깨닫는 것이다. 그런데 이 깨달음 자체가 또 하나의 프로젝트가 된다. "환상 가로지르기"를 성취해야 하는 새로운 과제. 대타자가 없다는 걸 깨달아야 하는 의무. 결국 우리는 또 뭔가를 해야 한다.
지젝이 놓친 게 하나 있다. 환상을 가로지르는 순간에도 우리는 여전히 살아야 한다는 것. 월요일 아침은 온다. 밥은 먹어야 한다. 대타자가 허구라는 걸 알아도 출근은 해야 한다. 철학적 통찰이 삶의 구조를 바꾸진 않는다.
어쩌면 진짜 문제는 "즐겨라"는 명령도, 대타자의 시선도 아닐지 모른다. 우리가 뭔가 해결책이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문제다. 지젝의 환상 가로지르기도, 마음챙김도, 미니멀리즘도 결국 같은 구조다. "이것만 하면 괜찮아질 거야." 하지만 괜찮아지는 순간은 오지 않는다. 왜냐면 괜찮아져야 한다는 그 생각 자체가 또 다른 명령이니까.